네이버 블로그에 있던 글을 복사 붙여 넣기 하기엔
나의 까미노가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새로 쓸까 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사실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기도 하고
뜻이나 의미 이런 것을 전달하기에는
나의 정보력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일기 정도나 남겨보려고 한다.

 

2016년 대명동 꿀빵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떠난 유럽여행

이 길에 담긴 의미를 간단히 설명 해보자면
성 야고보의 무덤(성지)에 가는(순례) 길이다.

그리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말은
'산티아고를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모두
까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길을 걸을 때 이스탄불에서부터 걸어온
한국인도 있었고 취리히 자기 집 앞에서부터 걸어서
나의 까미노는 그곳에서 시작했다 말한 친구도 있었다.

담긴 의미나 문장에 담긴 뜻이 정해져 있긴 해도
이건 뭐 스스로가 정의하기 나름이다.

 

난생 처음 도착해본 유럽은 생각보다 많이 익숙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양치컵을 깨먹고 새로운 컵을 사놨다.

유럽은 낯설지 않았다.

세상 어디든 다 사람사는 곳이다 라는 말은

완전 헛된 말은 아니었다. 모든게 새롭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게 익숙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여행 뒷부분에 갈수록 이런 의미없는 사진은 거의 없어진다.

유럽 초반에 자잘한 사진이 많다.

그 어린 나이에 유럽 대륙은 미지의 땅

흔한 콘크리트 건물마저 신비해보이기 마련이다.

 

파리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생장으로 떠났다.

내가 까미노를 선택한 심플했다. 가성비 유럽여행

나는 학교 선배와 술 마시며 여행기를 듣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종교적 이유도 어떤 큰 결심?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싸게 유럽을 오래 즐길 수 있다길래 그 이유 하나로
떠났다. 그런 것 치고는 큰 것들을 얻어오긴 했지.

 

바욘역을 거쳤다. 갑자기 다 내리라 하더니 버스로 갈아타게 했다.
기차든 버스든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눈치껏 따라가면 된다.

파리에서 하루 자고 떼제베타고
버스 갈아타고 도착한 생장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한 유럽 시골 마을 풍경

 

가방 무게가 얼마인지 재봤다.

배낭을 멘 무리들이 우글우글거린다.
멸치 떼처럼 그저 그들이 가는 곳으로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순례자 사무실이다.

 

학교 후배 제민이가 빌려줬던 킬리배낭

세계 여행을 갔던 후배의 가방을 빌려서
순례길에 왔다. 2021년 캠핑에 빠지면서
미스테리 랜치 82리터 배낭을 샀는데
저 때 40리터 배낭으로 40일 넘는 일정을
소화했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순례자 여권을 받는다.

첫날의 도착해서는 어안이 벙벙해서
기억이 많이 없다. 다만 해가지고 다음날
새벽에는 굉장히 안개가 짙게 껴서 시작이
우중충하군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출사표

글씨체가 별로긴 해도 멋지게 한마디 쓰고 싶었다.
김대훈 드디어, 시작 16.6.22 저 순간에는 몰랐지.
세월이 한참 지나도 사무치도록 그리울 줄은

 

안개가 짙었다.

첫날은 안개가 너무나 짙었다.
약간 쌀쌀하기도 했고 아직까진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어리둥절

 

화살표만 보고 걸으면 된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면서
걷고 또 걸었다. 첫날에 굉장히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세계지리 시간에 배웠던 피레네 산맥일 줄이야.

 

마법 같이 안개가 사라졌다. 

안개가 사라지던 경계선이었다.

습기 온도 모든 게 확 바뀌는 순간
누가 마법을 쓴 것처럼 그때 그 기분은
죽을 때 까지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저 구름을 뚫고 올라왔다.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왔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순식간에
모든 날씨가 이렇게나 확 바뀔 수 있지?

 

걷다보니 모든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까미노 첫날을 최고의 날로 꼽는 분도
있다고 들었다. 그럴만하다 싶었다.

 

전날 숙소에서 만난 형이 찍어준 사진

첫날 숙소에서 한국인 형 한 명을 만났다.
근데 성향이 안 맞아서 첫날 이후로 따로 걸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게 이런걸까?

세상을 내 발아래 둔 기분이었다.
이런 풍경을 살면서 본 적이 있던가?

 

길이 제법 험하고 길어가지고 중간에 요런 산장 알베르게도 있다.

체력이 부족한 분들은 여기서 묵고 가기도 한다던데
나는 체력이 부족하지 않아서 쭉 나아갔다.
다만 풍경이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다음에 온다면
하루 묵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베르게 마다 도장을 찍어준다.

중간중간 이런 숙소를 알베르게라고 한다.
순례자를 위한 여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들어가면 도장을 찍어준다. 이 도장은 말 그대로
내가 이 길을 내 두발로 걸은 겁니다? 하고 인증
받는 행위기 때문에 반드시 찍고 넘어가야 한다.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사먹은 샌드위치

첫날 장을 봐놨어야 했는데 깜박했어서
중간에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샌드위치
사 먹었다. 열량 채우려고 먹었지 맛은 없었다.
이왕이면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사 오길 바란다.

 

이따금씩 말도 안되는 풍경이 나를 반겨주기도 한다.

사진 몇 장으로 압축해놔서 되게 쉬운 첫날 같겠지만
진짜 피레네 산맥 넘기가 쉽지가 않다. 이놈의 산맥은
어떻게 돼먹은 건지 저 고개만 넘으면 하늘이 보이길래
저 고지만 넘으면 되나? 하고 올라가면 새로운 고지

 

사진첩을 열심히 뒤적거려 찾았다.

누가봐도 저 고지 뒤엔 내리막이 나올 것 같지만 

넘어서면 새로운 고지가 나온다. 그게 미칠 노릇. 


어...? 엥? 끝이 난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절대 만만히 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스틱 필수
한국에서 좋은 스틱 사가길 바란다. 필수다.
이런저런 이유 필요 없다. 이건 안 들고 가봐야
아하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몸으로 깨닫게 된다.

 

진짜 점프하면 뒤로 1-2m쯤 날아가지 않을까? 싶은 강풍도 만났다.

겨울에 피레네 산맥을 잘못 넘어가다간 

고립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뒤쪽 산장은 그럴 때 이용하는 곳이라더라.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온갖 고난을 겪고 나면 마주할 수 있는 풍경 

이 풍경을 마주했다면 당신은 안심해도 좋다. 

 

개고생 끝에 도착한 론세바예스
생장피에드포르 - 론세바예스 첫날 코스

 

시설이 진짜 좋다. 이 정도면 호텔 아닌가?
이야~ 앞으로 계속 이런 건가? 생각하면 오산

여담이지만 이곳 순례자 식사는 정말 맛없다.
전날 생장에서 뭘 많이 사 와서 먹던가
자판기에서 대충 뽑아먹으면 된다.

그래도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대화하고
함께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푸념하는
자리 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아깝진 않았다.

 

시작된 둘째날 아침

우중충한 아침,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을것 같다. 

어제 함께 걸었던 형은 자고있던 나를 깨워 

자신은 먼저 출발하겠다고 말한다. 

 

더이상의 동행은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현 

나홀로 숙소를 나서는데 앞에 한국인 두 분이 

발걸음을 멈칫하고 계신다. 가서 말을 걸어보니 

세상에 너무 어린 친구 둘, 같이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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